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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영국BBC 전기/ 다큐멘터리/ 드라마
1시간 20분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1.

여러분은 반 고흐 화가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저는 반고흐라는 화가를 관심 있게 봤어요. 동생 테오한테 쓴 편지가 책으로 출간돼서 그걸 보면서부터 반고흐라는 사람이 궁금했어요. 고독, 우울증, 자살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반고흐를 알지만, 반고흐가 테오한테 쓴 편지의 문장들은 사실 우울하다기보단, 신에 대한 찬양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굉장히 많았어요. 

 

반고흐의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애니메이션으로 된 거 포함해서 한 3편 정도 본 것 같아요. 반고흐에 대해서 사실 정확한 것들은 모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은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반고흐가 테오에게 한 말 중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산보를 꾸준히 하고 한결같이 자연을 사랑해야지, 바로 그것이 예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바른길이니까.
화가들은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보도록 가르쳐주거든_ 46p 영혼의 편지 책 중

 

2.

반고흐의 서명.

 

 

반 고흐는 1853년생 3월에 태어났어요. 네덜란드 출생이고, 사망은 1890년으로 37살에 파리에서 일찍 하늘나라로 갔죠. 

종교는 기독교랍니다. 

반고흐의 그림은 사실 반고흐가 살아있을 때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난한 삶을 계속 살면서 힘들게 살았죠. 그리고 그가 죽은 후 그림의 가치가 알려진 거죠. 반고흐는 죽기 2년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라고요. 그의 그림은 지금 봐도 엄청난데, 그때 알아주지 않던 고흐의 시절에 그의 맘이 어땠을지는 헤아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흐의 어린 시절은 평범했어요. 미술을 유난히 잘한다라는 점도 없었고, 오히려 그는 곤충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가 될 자질이 많이 보였다고도 해요.  그리고 굉장히 독서를 좋아했다고 해요. 특히 그가 가진 기독교 종교인 신학서적과 문학작품을 많이 다독했는데 이것이 고흐의 나중에 인생에 굉장히 영향을 미치게 되죠. 책에도 많이 나와있어요.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_53p

 

마태복음 18장에 있는 말씀이죠.  이렇게 자기 삶에 항상 신과 함께하면서 힘든 시절을 이겨내는 구절이 많습니다. 

고흐는 11살이 되면서 기숙학교로 가게 되며 프랑스어와 영어를 기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엄청 유창한 4개 국어를 할 줄 알았다고 해요. 네덜란드, 영어, 프랑스, 독일어 이렇게 했답니다. 고흐는 어머니 영향이 있던 것 같아요. 어머니 아나 코르넬리아는 직접 야생화를 스케치를 하거나, 꽃들을 수채화로 그리는 등 미술을 취미로 생활했는데, 그때 어머니를 본 고흐가 개를 보고 그린 스케치가 있다 합니다. 

 

고흐의 큰 아버지 센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센트에겐 아들이 없었다 해요. 그래서 동생의 아들인 고흐 빈센트와 테오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아꼈다고 해요. 큰 아버지의 영향으로 바르비종파의 그림을 보게 되면서 흥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바르비종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을 그리고, 상상 안에서 그리는 걸 벗어나서 밖으로 나가 스케치를 하고 보고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이 됐다 합니다. 그렇게 고흐는 안정적으로 화랑에서 일하면서, 미술을 시작했는데, 그때 만나게 된 사람이 밀레였다고 해요. 

 

사람으로 인한 인연을 통해 삶의 기회가 오고, 삶의 목표가 생긴다는 것이 결국은 관계를 통해서 생기는 꿈들이라는 것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흐는 구필 화랑에서 판화로 복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보고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해요. 고흐는 밀레를 정말 존경했고, 고흐의 그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그러나 고흐가 몇몇 손님들과 미술의 관점에 대해서 논쟁이 자주 일어났다고 해요. 그래서 화랑에서 해고되며 그때의 시절에 고흐가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라고 몇몇 전문가들은 추측을 합니다. 훌륭한 그림을 보호하고 작가를 지키는 이상적인 방식이 아닌 역시나 돈으로 이루어지는 그림들의 사고팔기를 보고, 화랑의 생활방식에 염증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도 여러 가지가 겹쳤다고 하네요. 

그러다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공부를 하는데도, 의견대립이 많아서 목회자 자격을 얻지 못하고 선교활동을 하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3.

고흐의 미술적인 특징은, 고흐는 새로운 미술 사조에 대해서 배움이 조금은 느렸다고 해요. 그 때문에 오히려 독특한 화풍이 생겨났다고도 얘기들을 합니다. 반고흐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색채에 대해서 예민하고, 꼼꼼한 필촉으로 반고흐만의 색채가 뚜렷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연을 사랑해서, 자연에 대해 굉장히 애정을 가졌으며 그것들을 그림에 많이 표현했죠. 제가 아는 건, 빛에 대한 '노란색'을 너무 좋아해서, 그의 특징을 계속 발견하다가 결국엔 눈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반고흐는, 굉장히 깊게 바라보는 관점으로 미술과 글을 접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인물 초상을 보면 다양하지만 눈의 깊이와 색채등 깊이 있게 그린 것을 볼 수 있으며,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반고흐는 툴루즈 로트레크, 폴 고갱 등 뛰어난 화가들과 만나며 조르주 쇠라, 피사로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면서 자기만의 스타일 계속 만들어나갔다고 얘기해요. 그리고 프랑스 남부로 떠나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합니다.

폴 고갱과 굉장히 친했던 반고흐는 함께 작품 활동을 하고,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고갱과 예술관에 대해 안 맞아 자주 다퉜다고 합니다. 그 후,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고 해요.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그림이죠. 

 

4.

빈센트 반 고흐는 1890년 들판에서 가슴에 총에 맞은 채로, 시간이 지나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요. 고흐가 정신병으로 자살을 했다. 타살이다.라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유튜브에 다큐멘터리를 보면 꽤 재밌는 얘기들도 나와요. 고흐가 총에 맞은 그 거리와 구도를 다 재서 재연을 하면, 결국 자살이 안된다고 얘기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을 믿었던 고흐에게는 '자살'이라는 얘기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이 태어났듯, 죽음 또한 나의 선택이 아닌 신에 뜻으로 인해 기다리는거죠. 영혼의 편지 책을 보면 정말 많은 철학관과 기독교관이 그에게 풍부하게 잘 나타나있어요. 정신질환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그가 죽은 후의 그의 그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가격이 뛰어넘으면서 유명해졌지만, 그가 쓴 편지를 보면 힘든 일과 고통스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작은 사소함에 기쁨을 누리는 것 또한 정말 많았어요.

 

이곳 풍광은 매우 아름다워서 번뜩이는 눈이 아니라 그저 소박하고 좋은 눈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그런 눈으로 본다면, 어디든 아름답거든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이런 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는 세상엔 사람들의 짐작보다 사랑할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거겠지. 
이 책은 나한테 놀라운 계시와 복음을 들려주었어.

 

반고흐의 생각과 편지, 그리고 그가 사는 삶에 대한 다큐를 볼 때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어요.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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