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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1.
양귀자 선생님은 1955년 7월 17일 대한민국 소설가입니다. 중 고등학교 때,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책으로 유명했던 분이죠. 저도 그때 당시 제목은 알지만 내용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국어과목에 중요한 책이라길래 본문 몇 개만 읽고 '그냥' 읽기 싫어졌다고 할까요, 시험에 의해 나온 책이라 그런가 거부감이 사실 조금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대 때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하나하나 절절하지만 담백하게 그려낸 문체들이 좋았거든요. 지금도 양귀자선생님이 쓴 모순 책은 계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습니다. 출간을 2-13년에 했는데 11년째, 계속 상위권에 오르는 듯하네요. 저는 모순 책을 가장 많이 필사를 한 거 같아요. 읽는 내내 가지 못했던 나의 길에 대한 아픔마저도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문체들이 많았어요. 한번 조금씩 필사한 글들 소개해볼게요.
2.
1장 생의 외침 :
ㅡ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1장의 글 문체부터, 저에게 와닿았어요. 가끔 지인들이 고민을 할 때나, 제가 일하는 곳에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가끔은 그 고민이 당연하게 '나'부터도 지나온 고민들이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귀 기울이고 있거든요. 그리고 힘이 들면 토닥이고 싶고, 그 사람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그러면서 조언도 해주지만, 사실 정작 사람들이 얘기하는 고민들은 제가 겪는 고민들과 비슷하긴 합니다. 제가 하는 조언이나, 위로의 말들도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들인 거죠. 그렇지만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직면이 될 때, 사실 그것을 이겨내기가 너무나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당사자가 된 순간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저 부럽고,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우울감으로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아요. 모순 1장에 이런 글이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_13p
( *양감 : 형태를 나타내는 기본적 요소의 하나로 표현된 대상이 지니는 부피감 혹은 무게감을 말한다. )
내 인생의 볼륨, 참 이 표현 매력적이지 않나요.
내 인생의 볼륨이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이 절망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sns 등, 잘 살아 보이고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안에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다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자존감이라도 채워지면 이런 것들이 부럽지 않을 텐데 모든 내면에 있는 내 인생의 자그마한 양감조차도 채워지지 않아, 볼륨이 생길 수 없는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런 것이 운명이라면, 그것을 내가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이것이 사춘기의 내가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어머니의 경험이 나에게서 멋진 삶을 살아 보고자 하는 동기 유발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_19p
사춘기부터 깨달은 똑똑한 주인공 안진진은, 탐구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걸 벌써 깨닫습니다. 사실 탐구를 하는 것도 내가 무언가를 받아들였을 때, 무언가를 보았을 때, 호기심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사실, 주인공 안진진은 조금 우울한 사람인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3.
게다가 내 주머니에는 한 시간 전에 사장에게서 받은 약소한 월급이 들어 있었다. 장미꽃쯤이야,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이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월급을 받은 날, 장미꽃 한 다발쯤 산다고 해서 세상이 잘못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꽃을 샀다. 하필이면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절, 오후 일곱 시 십오 분에._22p
가끔은 내가 나한테 꽃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아요. 금방 시들어버리니, 내 돈 주고 꽃을 사는 것이 사실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저는 한동안은 엄마에게 꽃을 많이 사다 줬어요. 꽃을 받을 때 내가 진짜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나이가 들면 더더욱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모자란 시간 때문에 한없이 짧다. 또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만큼 한없이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한 달 동안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랑을 완전히 부숴 버릴 수도 있다._90p
우리도 가끔 똑같은 시간 내에 느끼는 마음에 따라 시간이 길 때도 있고 한없이 모자랄 수도 있는 거 많이 느꼈을 거예요. 특히나 사랑이라는 것은 시공간을 정말 초월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무한하면서도 무서운 존재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사랑으로 행복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문드러질 수도 있거든요.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사람이란 연약한 존재. 왜 우리는 사랑에 받는 건 가끔은 당연하게 여기고, 정말 작은 상처하나의 말에는 죽기 전까지 기억하는 걸까요. 인간은 상처에 약한 존재인 건지, 364일 내내 사랑을 줬다가 하루, 상처를 주는 말을 해도 우리는 그 사랑보다는 상처에 더더욱 기억을 합니다. 이래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특이합니다. 행복을 통해서 오는 것보단 고난과 인내를 통해서 많이 배우고 성장을 하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사랑을 하면서 이별이라는 걸 경험하며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하죠. 사랑을 하는 그 순간보다는 이별을 통해서의 오는 감정들이 더욱이 소중하게 만드는 것도, 그만큼 인간은 어마어마한 그 큰 사랑을 전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이 됩니다. 후회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후회를 한다고 과거를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다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도 예민하게 반응을 할 수 있는 멋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ㅡ
사실 얘기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아서, 좀 쪼개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만큼 양귀자선생님의 모순이라는 책은 저에게 깊이가 있는 책이었어요. 지금까지의 다뤘던 모순의 내용에서는 자신의 연약한 인간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뜨거운 고통 앞에 맞서려고 하는 용기 있지만 담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안진진의 생각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그때의 시절에 그려지는 여성상에 대한 것도 많이 그려져 있죠. 그래서 조금은 겪어보지 않았던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제'가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글엔 모순(2)으로 가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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