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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sin' The Trane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New York/1961)
아티스트
John Coltrane Quartet
앨범
Chasing Trane: The John Coltrane Documentary (Original Soundtrack)
발매일
1970.01.01

 

1. 체이싱 트레인

덴젤 워싱턴의 '존 콜트레인' 시점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으로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라보는 다큐여서 그런가, 굉장히 몰입도가 있었다. 그가 남아있는 사진과 연주 동영상으로 존 콜트레인을 알 수 있었고, 지인이나 가족, 음악가의 인터뷰로써 존 콜트레인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중 나오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존 콜트레인은 엄청난 재즈 뮤지션이었지만 그의 출생은 1926년- 1967년 7월 17일 뉴욕에서 간암으로 41세에 사망하였다.

밑에 이제 존 콜트레인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2.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존 콜트레인 1926년 9월 23일 ~ 1967년 7월 17일

미국 색소폰 연주자 - 2차 대전 이후의 모던 재즈 신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인생은 짧고 굵게!'를 몸소 실천한 색소포니스트. '재즈의 성인'이라 불린다.

콜트레인은 1926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도시의 리듬 앤 블루스 전통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흑인 중하위 계층의 한계 속에서도 비교적 튼튼한 음악 교육을 받았다. 콜트레인 일명 트레인은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직업적 뮤지션으로서 그의 최초의 일거리는 1947년, 싱어 빅 마이벨이 있던 인디애나폴리스  출신 조웹의 리듬 앤 블루스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비교적 이름 있는 그룹에서 대체로 오랫동안 연주했다.

그는 디지길레스피와 같이 연주했으며 그 후 1955년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자신의 퀸텟에 채용했고 곧바로 그는 " Round about Midnight"의 솔로로 명성을 얻었다.

https://youtu.be/ZZM6Vp7zdWc

(miles daivs와 함께하는 so what 공연) 

하지만 여러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콜트레인도 마약에 취해있었고 심지어 클럽 공연 도중 졸고 있는 좋지 않은 행동을 보여 마일스는 참다못해 1957년 4월 중순에 콜트레인을 그룹에서 탈퇴시켰고, 동시에 마일스 퀸텟 1기의 역사도 끝나 버렸다.

그리고 트레인은 힘들게 마약을 끊은 뒤, 5월 말 뉴욕으로 돌아와 마일스 퀸텟 시절 음반사인 프레스티지에 자신의 첫 리더작 Coltrane을 취입했다. 이어 같은 해에 블루노트 레이블과 녹음한 첫 앨범이자 두 번째 리더작인 Blue Train으로 생애 첫 대박을 쳤다.

 

그리고 두 번째 시작된 단계는 텔로니어스 몽크와의 공동 작업이었다.

 

" 때때로 그는 내가 연주하고 있는 것과 다른 코드 진행을 연주했고,
우리들 중 한 사람도 거기에 맞는 코드 진행을 연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도 어떤 지점에서는 일치하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모두 함께 같은 코드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몽크가 연주에 다시 가세해서 연주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코드 진행만 기억하고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이때쯤 콜트레인은 아이라 기틀러가 명명한 "시츠 오브 사운드 "를 발전시켰다.

( 그것은 금속성의 유리 같은, 부서지는 듯하면서 충돌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소리가 시트처럼 넓게 깔리는 것을 말한다.)

 

곧 말하자면, 콜트레인이 솔로 부분을 연주하는데 음이 연속적으로 진행됩니다.
그 음들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매우 많은 배음 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자가 코드를 신속하게 치면서도 어느 정도는 그 코드의 음하나하나를 분절해서 연주할 때 얻는 효과가 떨리는 듯한 서브톤을 얻게 되었습니다 - 르로이 존스 설명 중 

 

트레인은 시츠 오브 사운드 보다 멜로디에 더 집중을 하였다. 그가 관심이 있었던 음악적 측면인 멜로디를 더 충실하게 다루기 위해서 먼저 콜트레인이 화성적, 리듬적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했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온 히트곡이 " My Favorite Thing "

 

1958년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새로 결성한 섹스텟(6중 주단)에 다시 합류했다. 그때 트레인은 흥미로운 '재즈의 모험'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처음 신중하게 선법을 시도한 아래 재즈를 공부하기까지 꼬박 10년간의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었다.

 

선법, 그 의미는 더 이상은 끊임없는 코드 변화에 기초한 임프로비제이션이 아닌, 변하지 않으면서 전체 멜로디의 저변에 있는 스케일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 마일스가 들고 나온 아이디어는 선법 (Mode)에 기반을 둔 모달 재즈(Modal Jazz)였다. 섹스텟이 낸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인 Milestones와 Kind of Blue 이 있다.>

 

그 후 콜트레인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자주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는 1957년에 신의 은총을 통해 영적 자각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콜트레인은 "나는 모든 종교를 믿습니다"라고 얘기하면서 종교를 신이면서 우주이고 우주이면서 신인 존재에게 바치는 찬양식으로 A Love Supreme 전체를 구성하며 찬송가풍으로 곡을 내보였다.

 

만년에는 점점 더 몽상적이고 Interstellar Space와 같은 우주 지향적인 음악을 추구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속 음악의 영향을 받아 공연과 녹음을 하기도 했다. 1967년 3월과 4월에 각각 생애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 녹음을 남겼고,  5월 7일 볼티모어에서 공연한 직후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 롱아일랜드의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간암 판정을 받고 그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향년 40세에 별세했다.

 

 

재즈 스탠더드 곡 중에 3/4 대표곡 

존콜트레인 my favorite things. 악보다. 나중에 유튜브 찾아서 곡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John Coltrane - my favorite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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